내가 뭘 얼마나 안다고, 점수까지 줘가면서 평가를 해놨는지 모르겠다.
부끄럽구만. 하지만, 그냥 놔두겠어.
미팅 주선에 실패한 나는 자매들에게 모다구리와 함께 삥까지 뜯겼었다.
이에 나는 남자쪽 주선자에게 거칠게 항의하였고.
남자쪽 주선자는 미안한 마음에 저녁을 사겠다고 하였다.
우리쪽 미팅 멤버인 일명 자매 1, 2, 3 도 동석할 계획이었으나,
자매 1 (29세. 고대 중문과) 은 몸이 으슬으슬한 것이 집으로 가야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자매 2 (27세. 서울대 농경제) 는 일주일을 미룬 과외를 또 미룰 수 없으며 주선자를 보면 다시 그들 (진상 1, 호빗 1, 거만 1)이 생각이 날 것 같다며,
동석하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자매 3 (25세. 성신여대 지리학과) 도 저도 그냥 피아노 학원 마치고 집으로 갈래요. 라고 해서.
결국은 홀로 남자쪽 주선자를 만나러 갔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99학번 학과 동기이다.
지난 이야기를 하다보니 취기가 슬슬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자리를 옮겨 눈도 비도 아닌 것을 보며 B&B를 한잔씩 시켰고,
축축한 음악을 들으며 B&B의 달콤하면서도 깊은 향에 취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백석(30세, 고대 언어학과)이 나타났다.
아니 실은 내가 백석을 부른 것이다.
그는 남양주에서 봉고차로 눈길을 뚫고 한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 곳으로 왔다.
우리는 김치찌개를 보글보글 끓이며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나는 점점 졸려갔다.
백석, 그는 응앙응앙 거리는 목소리로 나를 노래방으로 이끌었고.
우리는 각자의 노래에 다시 한번 취했다.
푹푹 나리는 눈에 나는 자꾸 미끄덩 미끄덩 하였고,
이에 신이난 택시도 덩달아 춤을 추었다.
집에 도착해서 핸드폰을 열었을 때는,
오씨로 추정되는 어떤 여성에게서 "조심히 들어가고 야한 꿈 꾸세요 ^^"라는 문자 메세지가 도착해 있었다.
나는 내일 지각을 하겠노라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
아침에 눈을 뜬 나는 ㅅㅂ을 외치며 서둘러 샤워를 했고,
출근길에 본 하얀 나무들이 너무 예뻐서 정말로 지각을 하고 말았다.